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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제도
  • 올린이 : ... ( 2014.05.24 13:55 ; From : 119.197.7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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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墳墓(분묘)란?
    영혼불멸의 신앙을 지녀 온 우리민족은 이미 석기시대부터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이있어 분묘의 형태가 나타났으며,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부터 비롯된 것 같다.분묘의 형태는 시대와 나라, 지방 또는 문화상태, 계급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하는데, 대체적으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거한다.
    즉, 산을 뒤로 업고 남쪽을 향하며 산의 줄기는 좌로 청룡(靑龍), 우로는 백호(白虎)를 이루고, 앞에는 물이 흐르며 주산(主山)의 약간 높은 부위에 위치하고, 앞은 몇 층의 단상을 이루면서 주위에 호석을 두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사대부의 무덤 주위에는 망주(무덤 앞에 세우는 한상의 돌기둥)를 세우고 석인(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배치하였으며, 분묘 앞에는 상석(제물을 놓기 위하여 돌로 만든 상)과 묘표(墓標)를 두고 신도비(神道碑)또는 묘비(墓碑), 묘갈(墓碣)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했으나, 조선시대에는 유교로 말미암아 중을 제외하고 토장을 하여 분묘가 많이 발달하였다.
    중국에서는 반드시 부부를 함께 묻었는데 남편은 왼쪽에 아내는 오른쪽에 묻었으며, 처녀도 약혼을 했으면 약혼자 무덤에, 약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총각과 명혼(저승에서 하는 결혼)을 시켜 합장(合葬)하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묘소(墓所);
    묘소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墓)"자 만을 기록하고, 좌향[(坐向:묘가 위치 한 방향: 방위(方位)]과 석물등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표시하여 합장의 여부등도 기록한다.
    좌향은 대개 '* 좌(坐)'로 표시하는데 예를 들어, '자좌'라 하면 자는 정북을 나타내 북을 등졌다는 뜻이므로, 정남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 ' 좌우'는 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묘를 바라보는 사람의 좌우에는 정반대가 되며 좌는 동·우는 서가 된다.

    합봉, 합묘는 두 부부를 한 봉분으로 합장했다는 말이고, 쌍봉은 같은 묘소에 약간 거리를 두고 두 봉분을 나란히 만들었다는 것이다.

    2). 묘계(墓界);
    묘계는 무덤의 구역으로 품계에 따라 무덤을 중심으로 1품은 사방 100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50보, 생원, 진사는 40부 그리고 서민은사방 10보로 제한하였다.

    3).묘포(墓表);
    표석이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관직 이름과 호를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사적(事績) 또는 비석을 세운 날짜와 비석을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4). 묘지(墓誌);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 또는 풍우(風雨)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리는것(失護;실호한다)에 대비해, 금속판이나, 돌, 도판에 죽은 사람의 원적(原籍)과 성명(姓名), 본관, 원적, 성행(性行, 경력등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다.

    5). 묘비(墓碑)와 비명(碑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이며, 비명이란 비에 생긴 글로서 명문, 비문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고인의 성명, 본관, 원적, 성행, 경력등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다.

    6).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개 무덤 동남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라는 말을 사자의 묘로 즉, 신령의 길이라는 뜻이다.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종2품 이상의 관리들에 한하여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3품 이상의 관직자의 묘에 세운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에 와서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세우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왕의 신도비로서는 건원릉의 태조 신도비와 홍릉의 세종대왕 신도비가 있으며,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여 그 이후에는 왕이 신도비는 세우지 않았다.

    6). 묘갈(墓碣);
    신도비와 비슷하나 3품 이하의 관리들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동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재와 규모가 작고 빈약하다.
    중국에서는 진나라에서 비롯됐으며, 당나라에서는 5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세워졌다.
    묘소의 방향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올 것이니 미리 숙지한 후 개인별 유사(遺事)를 볼 것.
    묘소가 자좌(子坐)라고 되어 있으면 고인의 머리 쪽이 子측 방향 즉, 북쪽이 되므로 누워 계신 방향은 정남향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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