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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家禮)와 가정의례
  • 올린이 : 한양머슴 ( 2012.11.25 22:40 ; From : 122.44.181.40 )
  • 조회 : 1756 회
  • ◆가례(家禮)와 가정의례
    가례와 가정의례는 같은 뜻인데 옛날에는 가례라 했고, 현대에는 가정의례라 한다. 가정의례란 가정에서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행하는 예절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거쳐야 하는 행사라는 의미에서 통과의례(通過儀禮)라고도 한다.

    ◆가정의례의 종류
    옛날의 가례는 관례(冠禮) 혼례(昏禮) 상례(喪禮) 제례(祭禮)등 사례(四禮)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祠堂)제도와 예복인 심의(深依)제도 및 가정생활을 정한 거가잡의(居家雜儀)를 포함시켜서 말했다.
    ① 성년례(成年禮) : 아이가 자라서 사회적으로 책임능력이 인정되는 나이에 행하는 의식이다.
    ② 혼인례(婚姻禮) :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의식이다.
    ③ 상장례(喪葬禮) : 사람의 주검을 갈무리 하고 매장(埋葬)하며, 근친들이 상복(喪服)을 입고 근신하는 의식이다.
    ④ 제의례(祭儀禮) : 죽은 사람을 추모해 가리는 의식이다. 사당제도는 여기에 포함된다.
    ⑤ 수연례(壽筵禮) : 어른의 생신(生辰)에 즐겁게 해드리는 의식이다.

    ◆제례(祭禮)의 의의(意義)
    제례(祭禮)란 제사(祭祀)를 지내는 여러 가지 예절로서, 기복(祈福)을 위해 신명(神明)을 받들어 모시는 의식이다.
    인간은 역사 이전의 상고(上古) 시대부터 인간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行使)하는 하늘·땅·해·달·바람·비·산·강 등의 자연을 비롯하여 조상(祖上)의 혼령을 섬김으로써 재앙을 예방하고, 후손의 번영을 기하려는 의도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던 것이 점차 인간 지능(人間知能) 발달과 과학적 지식의 보급(普及) 및 외래(外來)문화의 영향으로 그 실체(實體)가 드러남으로써 대부분의 제사 대상(對象)이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되었다.
    따라서 제사의 대상의 의식(儀式)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와 특정 직업이나 지역에서 행해지는 풍어제(豊漁祭)나 산신제(山神祭) 등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제사라고 하면 선조(先祖)에 대한 의례(儀禮)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화 되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선조를 구체적인 제사의 대상으로 느끼기 시작한 데는 중국 유학(儒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성리학(性理學)이 수입된 고려말부터 함께 전해온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우리나라의 조상 숭배 사상을 보편화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활을 하였고, 그 후 성리학 치국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 시대에 들어서 더욱 그 비중이 커졌다.
    이러한 제사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복잡한 의식으로 인하여 다소 형식주의(形式主義)와 허례허식(虛禮虛飾)의 폐단을 낳기도 했지만. 존재의 근원(根源)에 대한 뿌리 의식을 고취시켜줌과 동시에 혈족(血族)간의 유대를 돈독히 해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제사(祭祀)의 유래(由來)
    제사를 지내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먼 옛날 사람이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또는 사나운 맹수(猛獸) 등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늘과 땅 심수(深水) 거목(巨木), 높은 산, 바다, 조상 등에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던 것이니 이것이 즉 제사가 발생한 근원(根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연변화나 어떤 공격체나 또는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하여져 온 제사는 중세(中世)와 근세(近世)에 와서는 차츰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하여졌으나 그 대신 유교적인 번잡한 절차와 자연숭배의 미신적인 의식이 높아지므로 가정마다 연간 제사를 지내는 횟수는 무려 48회 이상이나 되었다. 제례(祭禮)는 상례(喪禮)와 마찬가지로 그 의식절차(儀式節次)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와서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유학자(儒學者)나 예문가(禮文家) 사이에서 갑론 을박의 논쟁이 많았을 정도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제례는 고려시대에는 대부(大夫) 이상은 증조까지 3대, 6품이상의 벼슬아치는 할아버지까지 2대, 7품이하의 벼슬아치와 평민은 부모만을 가묘(家廟)를 세워 제사하게 하였으나 조선시대에와서 주자가례에 의하여 양반계급만이 4대까지 제사 지내도록 되어있고 차차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너도나도 양반행세를 하노라고 4대를 봉사(奉祀)하게 되었으며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에는 조부모와 부모까지 2대를 봉사(奉祀)하게 되어 있다.

    ◆제례(祭禮)의 本意
    제례(祭禮)란 제사(祭祀)를 지내는 여러 가지 禮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 자손(子孫)이 친족(親族) 친지(親知)가 슬픔 속에서 장례(葬禮)를 지내고 祖上의 은덕(恩德)을 추모(追慕)하여 정성(精誠)으로 記念하는 것이 祭祀이다. 제사라 함은 始祖以下 선대 선조들을 추앙(推仰)하는 여러 가지 儀式을 비롯하여 돌아가신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형제와 배우자 기타 친족을 추모 또는 추도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날이 혹은 四時名節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절차다.

    ◆기제 지내는 법
    먼저 관수를 하고 대문을 열어놓는다.
    진설위를 하는데 정침이나 정청에 병풍을 치고 제상을 정제한 후 제물을 진설하고 지방 또는 사진을 모시고 제주는 상 앞에 꿇어 앉아 향을 피우고 재배한다. 제관은 그 서열에 따라 서립하고 다음 순서에 의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강신전에 문전제를 지낸다. 제사 지낼때는 三獻官二執事로 하여 제사를 지낸다.
    (
    기제를 지내는 순서 및 방법은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① 강신(降神) :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의식이다.
    제주는 신위앞에 꿇어 앉아 분향하고 집사가 제상 앞에 잇는 잔을(잔대와 함께) 가져다 제주에게 준다. 우집사가 술을 조금 부으면 제주는 왼손으로 잔대를 쥐고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향로에 우로 세 번 좌로 세 번 돌려서 모사에 세 번 나누어 붓고 빈잔을 집사에게 주면 집사는 이를 받아 제자리에 놓는다. 제주는 기립하고 1~2보 후퇴한뒤 두 번 절하고 원위치로 복귀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계신 신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② 참신(參神) : 모든 제관이 함께 재배한다. (左手執右手·兩膝屈·鼻過四指 =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고 코 높이 올리고 양무릎을 꿇으면서 재배한다)
    신주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하고 사진및 지방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한다. 이는 신에게 편안히 오셨습니까 하는 첫인사의 절이다.

    ③ 초헌(初獻) : 첫 번째 잔을 드림.
    제주가 초헌이 되어 신위에 나아가 꿇어 앉는다.
    집사가 제상에 있는 잔을(잔대와 함께) 가져다가 헌과에게 주면 우집사가 제주를 붓는다. 제주는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양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주면 집사가 잔을 받아 신위전에 드린다. 양위 합제일 때는 같은 방법으로 비위전에도 헌작한다. 다음에 저를 걸어 헌관이하 부복하면 참사자가 모두 꿇어 앉는다. 축관이 좌편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출문은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讀祝이 끝나면 헌관은 1~2보 후퇴하여 재배하고 원위치로 복귀한다.

    ④ 아헌(亞獻) : 두 번째 잔을 드림.
    아헌은 主婦가 되며 神位前에 나아가 궤좌하면 집사는 祭床에 있는 술잔을 가져다 퇴주기에 비운다.
    빈잔을 헌관에게 주면 司尊이 제주를 붓는다. 헌관이 잔을 집사에게 건내주면 집사는 이를 받아 신위전에 드린다. 헌관은 1~2보 후퇴하여 再拜하고 원위치로 복귀한다. (婦人은 四拜한다.)

    ⑤ 종헌(終獻) : 세 번째 잔 드림.
    아헌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제주는 다음 차례때 첨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제주를 조금 적게 붓는다.

    ⑥ 유식(侑食)·계반삽시(啓飯揷匙)
    다시 祭主가 궤좌하면 집사가 딴 잔에 제주를 부어 종헌때 드린 잔에 만잔이 되도록 添酌하고 메그릇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메그릇 중심에 꽂는다. (숟가락은 바닥-안쪽이 동쪽으로 가게 한다)
    祭主는 小退하여 제관 모두 再拜한다.

    ⑦ 합문(闔門) : 주위는 조용하게
    전원이 밖으로 나오고 문을 닫고 조용히 기다린다.
    그 시간은 禮法에 일식구반(一食九飯)경이라 하므로 현시간으로는 4~5분정도이다.

    ⑧ 계문(啓門) : 문을 연다는 뜻
    기침소리를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⑨ 헌다(獻茶)·숙냉(熟冷) : 혹은 點茶
    熟水(숙늉)를 드려다 국그릇을 내리고 숭늉을 올려 놓고 숟가락을 뽑아 메밥을 세 번 떠서 숭늉에 말고 숟가락을 숭늉그릇 위에 걸고 참사자는 일회 부복한다.
    ※「메의 유래」
    祭飯을 통칭 「메」라고 하는데 이 말은 印度의 말이다.
    佛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佛前에 올리는 밥을 「메」라 하였기 때문에 祭祀에 올리는 밥도 「메」라 하게 되었다.
    日本말로 밥을 「메시」라 하고 쌀을 「고메」란 것도 이에 인유된 것이라 한다.

    ⑩ 철시저(撤匙箸)
    슝늉 그릇에 있는 수저를 내려 시접(匙接)에 높고 메 뚜껑을 덮는다.

    ⑪ 사신분축(辭神焚祝)
    一同 再拜한 다음 祝文과 紙榜을 소각(燒却)한다. (이때의 재배는 신에 대한 하직인사를 뜻한다.)

    ⑫ 철상(撤床)
    祭祀가 끝났으니 제수상(祭需床)을 거둔다.

    ⑬ 음복(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내려주신 음식이란 뜻으로 제사(祭祀)가 끝나면 제주 이하 참사자(參祀者)와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음식을 친족과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하며 이웃 어른을 모셔다가 대접을 하기도 한다.
    음복(飮福)도 祭禮의 일부다.

    제수진설에도 말이 많다. 여북해서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말라」는 말이 나왔으며, 「깍아놓아라 굴러간다」는 풍자(諷刺)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에 棗(대추조)를 찾아보면 「조동율서(棗東栗西)」라고 되어있으나 禮文에는 없는 말이다. 또 紅東白西라 하나 이것도 찾아 볼 수 없다.
    禮文에느 「조서율차(棗西栗次)」라 했을 뿐이다. 퇴계(退溪)는 「어동육서(魚東肉西)로 생동숙서(生東熟西)」와 적유삼종(炙有三種)(魚肉雉)이며, 魚肉은 천산(天産)이라 陽이니 기수(寄數)요, 과곡(果穀)은 지산(地産)이라 陰이나 우수(偶數)라 약가빈난변(若家貧難辨) 측의음양수하여 감품(減品)도 미유불가(未有不可)」라 하였다.
    치적(雉炙)은 계적(鷄炙)으로 대용한다. 또 사계(沙溪)에 의하면 「상례비요(喪禮備要)」의 진설도(陳設圖)는 板本의 誤也」라 하였고, 퇴계(退溪)는 基祀에는 진찬례(進饌禮)가 없으나 반갱(飯粳)不用도 무방하다고 하였지만, 구봉(龜峰)은 원야예(原野禮)에도 반갱(飯羹)이 있으니 飯羹을 아니 써서는 안되며, 終獻때 계반개(啓飯蓋)하고 삽시(揷匙)후에 부복하라고 하였다. 진설요령은 집사자(執事者)의 左가 西요 右가 東이다. 따라서 제상의 앞이 南이 되고 뒤가 北이 된다. 南에는 제상앞 중앙에 향탁을 놓고, 그 동편에 주준상(酒樽床),西편에 祝탁을 놓는다.
    향탁위에는 후면 중앙에 모사를 놓고 그 뒤줄에 합동노서(盒東爐西)로 향합과 향로를 놓고, 주준상위에는 강신잔반(降神盞盤), 퇴주그릇 주전자 술병을 놓고, 향탁앞에 배석(拜席)이며 北面중앙에 神位인데 고서비동(考西?東)이다. 제상남단이 第五行으로 실과인데, 生果가 西편. 造果는 東이며. 四行이 菜(나물), 三行이 湯(탕), 二行이 炙(적), 一行이 반갱(飯羹)이다.
    四行 양끝에 「左脯(포) 右醯(혜)」, 二行 양끝에는 「左麵(면) 右餠(병)」, 一行에는 左端으로부터 「匙箸 飯 盞 羹 醋」가 되고, 合設時 에는 「飯 盞 羹 匙箸 飯 盞 羹」이 된다.
    해는 젓갈, 초(醋)는 식초이며 포(脯)는 문어, 북어, 전복 등이 있고 적(炙)은 魚炙 肉炙 雉炙은 鷄炙으로 대용한다.
    그리고 탕(湯)은 어탕(魚湯), 육탕(肉湯), 채탕(菜湯)이 있는데 제수는 살림형편과 그때 그때 사정에 따를 것이지 수량이 구애될 필요는 없다. 제수의 가지수 보다는 고인을 기리는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다음의 제반도(祭饌圖)에서 본다면 祭祀 지내는 神位를 向하여 南便을 東쪽, 右便을 西쪽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位置로 陳設한다.
    좌포우혜(左脯右醯) : 浦는 左便에 놓고 食醯는 右便에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 : 魚物은 東便에 놓고 肉物은 西便에 놓는다.
    동두서미(東頭西尾) : 生鮮의 頭는 東便으로 向하게 하고 尾는 西便으로 향하는 것이며 西頭東尾로도 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 : 果實이나 果의 붉은것은 東便으로 놓고 白色것은 西便으로 놓는다.
    (지역과 家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失禮되지 않는다.)

    ◆제수진설의 일반적인 원칙
    제수의 진설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풍속 그리고 가문의 전통에 따라 조금식 다르다. 그래서 가가례 또는 가문가례(家門家禮)라고도 하며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하고 참견 말라는 풍자적인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제주가 제사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을 東 왼쪽은 西라 한다.
    ※ 단위제(한분 모실 때)는 메(밥)과 갱(국)을 하나만 차려 올린다.
    ※삼치· 칼치· 꽁치등 치자로 끝나는 생선과 복숭아는 제사상에 쓰지 않는다.
    ※ 추설 절사에 햇곡식 햇과일을 사용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메(밥)를 대신하여 추석에는 송편을 설에는 떡국을 쓴다.
    ※一行, 三行은 홀수로 二行, 四行은 짝수로 하여 陰과 陽을 區別한다.


    진설의 순서는 맨 앞줄에 과일, 둘째 줄에 포와 나물, 해, 셋째 줄에 탕, 넷째 줄에 적과 전, 다섯째 줄에 메와 갱을 차례대로 놓는다.

    △ 제사상- 단위진설도 (진설도 방식은 지방에 따라 약간 다른점이 있습니다)
    △ 제사상- 양위진설도 (진설도 방식은 지방에 따라 약간 다른점이 있습니다)
    .*삼치, 갈치, 꽁치등 '치'자로 끝나는 생선과 복숭아는 제사상에 쓰지 않습니다.

    ① 조율시이·홍동백서(紅東白西) : 왼쪽에서부터 대추, 밤, 감, 배, 사과의 순으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으로 설한다.
    ② 채(菜) 즉 나물류를 놓는 줄로써 (左脯右醯 · 生東熟西)라 하여 포(脯)는 왼편에 놓고 혜(醯)는 오른편에 진설하고 나물류 즉 침채(沈菜) 청장(淸醬) 숙채(熟菜) 등은 가운데 진설한다.
    ③ 탕을 놓는 줄로써 다섯가지 맛을 갖춘 탕을 단탕(單湯), 삼탕(三湯), 오탕(五湯), 칠탕(七湯) 등으로 하는데 어탕(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으로 소탕(蔬湯)은 가운데 진설한다.
    ④ 적과 전(煎)을 진설하는 줄로써 적(炙)이라 함은 불에 굽거나 찐것을 말하며 전(煎)은 기름에 튀긴 것으로 어(魚)로 만든것을 어전이라 하며 육(肉)으로 만든것을 육적, 육전이라 한다. 그리고 어동육서라 하여 어류(魚類)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또 동두서미라 하여 생선(生鮮)의 머리는 동쪽에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⑤ 메와 갱을 놓는 줄로써 메는 왼쪽에 갱은 오른족에 높고 편(떡)은 오른쪽에 놓고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제주도밀박종친회
    본문은 관혼상례로 이기 요함 한양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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