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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洲源流考에 新羅가 滿洲에 있다고 紀錄
  • 올린이 : 연구원 ( 2020.07.15 18:48 ; From : 211.230.86.211 )
  • 조회 : 379 회
  • '滿洲源流考' 라는 歷史書에는 新羅가 滿洲에 있다고 紀錄되어있다,
    各種 文獻에 나오는 모든 地名이 現在 中國에는 있다.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 있어야한다.
    조선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곳 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 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불리고 있다.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후 漢나라에서 漢四郡을 設置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 되어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 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너비가 2천여리, 남북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사실 학계에서 '한단고기'는 위서라고 하여 취급조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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