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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古阜) 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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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古阜)

고부(古阜)는 전라북도 정읍군에 속해있던 옛 지명으로 본래 백제 때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을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고부로 고쳤다.
고려는 이 지방을 다스리던 후백제가 망한 936년(태조 19), 이를 영주(瀛州)라 칭하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광종(光宗) 때에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는 등 중요한 행정 구역의 하나를 이루었다. 현종(顯宗) 때에 이르러서는 고부군으로 그 이름을 다시 고치고, 충렬왕(忠烈王) 때 잠시 영광군(靈光郡)에 병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어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1914년 백산면(白山面), 거마면(巨麻面), 덕림면(德林面)은 부안군으로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정읍군에 병합되어 그 일부 지역만 고부면으로 남아 있다. 고부 최씨(古阜崔氏)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始祖)인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역임하고 평북 구성(平北龜城)에 정착한 최 척(崔 陟)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先祖)들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고부(古阜)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후손 용인(龍仁)은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으며, 치민(致敏)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또한 치항(致恒)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종수(鐘秀)는 감찰(監察)을, 태덕(泰德)은 의관(議官)을 역임했다. 그외 희철(喜哲:오위장), 의걸(義杰:별장), 득룡(得龍:부사과) 등이 유명했고, 종익(鐘翼)은 주부(主簿)를 역임하여 장사랑(將士郞)에 오른 호정(虎精)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부 최씨(古阜崔氏)는 남한에 총 295가구, 1,28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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