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씀 | 연 혁 | 업무소개 | 오시는길
  성씨검색 | 본관별검색 | 기타자료검색
  족보의 정의 | 족보의 종류 | 옛 분묘제도 | 성씨와 본관 | 연호대조표 | 관청및 벼슬이름 |
  예절 상식 | 관례 | 혼례 | 상례 | 제례
  질의답변 | 도서관 뉴스 | 생활상식 | 편찬된족보
성씨조회
전체
강진(康津) 이(李)
유래 | 분파도 | 유적지 | 소장족보목록
다른 본관
강진(康津)

강진(康津)은 전라남도 남서해안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의 합명(合名)인데, 도강현(道康縣)은 백제의 도무군(道武郡)으로 통일신라 경덕왕 때양무군(陽武郡)으로 개칭하고, 고려시대에 도강으로 고쳐서 영암(靈岩)에 속하게 했다. 탐진현(耽津縣)은 원래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에 예속시켰으며, 고려시대에는 영암에 속하게 했다가 뒤에 장흥(長興)으로 이속(移屬)시켰다. 1417년(태종 17)에 각 병마절도사영을 도강 구치(舊治)에 이설(移設)하고 양 현을 합쳐서 강진군을 설치하여, 탐진에 치소(治所)를 두었다. 1895년에 나주부(羅州府)의 관할 하에 들어갔고,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강진 이씨(康津李氏)의 시조(始祖)는 신라(新羅) 남해왕(南海王) 때의 사람인 이 완(李 完)으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며,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광정대부(匡靖大夫)로 검교첨의찬성사(檢校僉議贊成事)에 오른 진(珍)을 일세조(一世祖)로, 강진(康津)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진(珍)의 아들 석(碩)이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산원 동정(散員同正)을 지냈고, 손자 영기(英奇)는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은거(隱居)하여 조선조에서 수차 벼슬에 오를 것을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계유정난(癸酉靖亂) 때 공(功)을 세운 터(攄)는 진(珍)의 증손(曾孫)으로 공신(功臣)에 책록되어 목사(牧使)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인문(仁文)은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부제학(副提學) 만균(萬鈞)은 중종(中宗) 때 문과에 올라 경연관 참찬관(經筵館參贊官)을 거쳐 춘추관 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지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다.
그 외 학자로 이름난 사경(思敬)과 효자 상기(象璣)가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봉수(鳳洙)가 독립운동가로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강진 이씨(康津李氏)는 남한에 총1,488가구, 6,9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29번길 9 (심곡2동) 봉호B/D 401호| 관장 : 김 원 준
전화: 032-654-4788, 02-2699-2693  | Mobile : 010-4000-6357  | 팩스: 032-654-4788
Copyright ⓒ 2003 JOKBO.r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