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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음(江陰) 단(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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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 대흥(大興) 연안(延安) 
강음 단씨(江陰段氏)

강음(江陰)은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속해있는 현(縣) 이름으로 상해(上海)와 남경(南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교통의 요지로 면사(綿絲)·면직물(綿織物) 공업이 성한 곳이다.

단씨(段氏)는 본래 중국 경조(京兆: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정장공(鄭莊公)의 아우 숙단(叔段)의 후손이 이름자인 단(段)을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가 된다.
우리 나라 단씨(段氏)는 강음(江陰)과 연안(延安)을 비롯하여 대흥(大興)·풍덕(豊德)·청주(淸州)·고산(高山)·강릉(江陵) 등 19본(本)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해지나 강음과 연안을 제외한 나머지 관향(貫鄕)에 대해서는 미상(未詳)이다. 강음 단씨(江陰 段氏)의 선계(先系)는 중국(中國) 강음현(江陰縣) 출신인 단일하(段一河)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강음단씨세계(江陰段氏世系)」에 의하면 그는 1509년(명 무종 정덕4, 조선 중종4)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여 내원직각(內院直閣)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재성(載聖)은 1522년(가정 원년)에 문과에 장원하여 기주(冀州)의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고 한다. 그후 일하(一河)의 현손(玄孫) 희상(希詳)이 명나라 참정(參政)에 입명되어 1597년(선조 30) 원병(援兵)을 이끌고 총병장(摠兵將)으로 조선에 건너온 아버지 단만리(段萬里)를 따라 동래하여 평양(平壤)에 정착(定着), 풍양 조씨(豊壤趙氏) 익보(益輔)의 딸과 혼인하고 우리나라에 머물러 살게 되어 동래조(東來祖)로 받들고 있다. 그로부터 문호(門戶)가 열린 강음 단씨는 희상(希詳)의 아들 사 량(仕良)이 부조(父祖)의 공훈(功勳)으로 좌랑(佐郞)이 되었고, 손자 모동(慕東)은 종사랑(從仕郞)에 올라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그후 희상의 현손(玄孫)인 오성(五星)이 영조(英祖)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후 슬하에 태형(兌炯)·진형(震炯) 형제를 두어 강음 단씨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하였는데, 맏아들 태형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여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오른 아들 붕서(鵬瑞)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공조 참판(工曹參判)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낸 복현(福顯)과 그의 아들 기완(基完 : 오위장을 역임)이 유명 했고,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윤호(潤浩)는 한말(韓末)에 내장원 통신감(內藏院通信監)을 역임한 동주(東柱)와 함께 가문 (家門)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강음 단씨(江陰段氏)는 남한에 총 174가구, 72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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