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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長水) 황(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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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황씨(長水黃氏)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우평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고택이라 하여 장계군에 속하였다가 고려 태조 23년에 장천현으로 남원부에 속하였고, 1392년 조선 태조 원년에 장수현으로 개칭하였다.
장수황씨(長水黃氏)의 시조 황경(黃瓊)은 통일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시중을 지냈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증참의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의 사대 명상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황희(黃 喜) 정승을 들수 있다. 그는 1363년 개성에서 판강릉부사 황군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 했으나 이태조의 간청으로 벼슬길에 올라 태종 때에는 6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세종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영의정에만 18년 동안 재임하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등 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의 아들 치신, 보신, 수신, 직신 4형제도 모두 벼슬에 등용되어 가문을 빛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오위장 열의 아들 정욱이 동지중추부사, 이조판서 등을 거쳐 광국일등공신으로 장계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소사가 되어 왕자 순화군 보를 관동으로 배종하기도 했다. 문장에 능한 그는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었다. 문집으로 [지천집(芝川集)]이 있다.

영조때 대제학을 지낸 경원은 삼례에 정통했고, 특히 고문에 밝았으며 서예에 뛰어나, 부사 관의 아들인 맹헌, 여헌, 효헌 3형제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장수황씨(長水 黃氏)는 남한에 총 29,970가구, 126,74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대전리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충남 보령군 웅천읍 구룡리, 소황리
전북 무주군 부남면 유평리

경북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경북 경산군 안심읍 동내동
전남 장흥군 대덕면 덕산리

경북 문경군 산북면 대하리

전북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전북 남원시 사매면 수월리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29번길 9 (심곡2동) 봉호B/D 401호| 관장 : 김 원 준
전화: 032-654-4788, 02-2699-2693  | Mobile : 010-4000-6357  | 팩스: 032-654-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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