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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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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南陽) 홍(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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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조상을 달리하는 두 집안이 동성동본(同姓同本)을 일컫는 성씨. 우리나라 2백 49개나 되는 성씨 가운데 그런 성씨는 오직 남양 홍씨 뿐이다.
고려(高麗), 조선(朝鮮)에 걸쳐 근 1천여 년 융성을 누리며 우리나라 10대 문벌의 하나로도 꼽혔던 남양 홍씨는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의 전혀 다른 두 계보가 있다.


<당홍>은 멀리 고구려(高句麗)시절 당나라에서 귀화해 온 홍학사의 후예, <토홍>은 고려 고종조(高宗朝)의 김오위(金吾衛) 별장 홍선행(洪先幸)의 자손으로 각각 일컬어 온다.


당홍·토홍이라는 속칭도 바로 이같은 <귀화파>와 <토착파>의 구분에서 연유했다. 그러나 정작 <토착파>인 토홍의 역사보다 귀화파인 당홍의 역사가 3백여 년 이상 길다는 데서 동성동본 두 집안의 관계는 역사의 미궁에 돌아가 있다.


두 집안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 하나는, 당홍은 글자 그대로 당(唐)나라에서 귀화해온 홍씨이며 토홍은 우리나라 토착의 홍씨라는 것. 그 둘째는, 당홍은 본디 남양(南陽)의 옛 이름인 당성(唐城) 홍씨의 약어로서 또 다른 남양 홍씨가 생겨나자, 이를 구분하기 위해 당홍에 대칭하는 용어로 토홍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는 것. 그 셋째는 당홍의 시조로 일컫는 홍학사의 후예 가운데 일파가 난을 피해 신분을 감추며 별계의 토홍을 내세웠다는 설(당홍측주장) 등이다.


상식적으로는 두 번째의 가설이 가장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실제 본고장인 남양(南陽)(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는 토홍을 남양 홍씨로, 당홍을 당성 홍씨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하나 어느 것도 입증할 문헌이나 증거는 없다. 두 집안은 오래 전에 소득 없는 뿌리 밝혀내기의 수고를 포기한 채 서로 따로 계보를 가리되 남아닌 <종씨>로 사이좋게 지내오는 터다. 조상은 다르지만 동성동본인 만큼 서로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근래엔 각자 종친회 외에 『범(汎) 홍씨 대동친목회』(회장 토홍측 홍승만(洪承萬)변호사)까지 결성,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홍씨는 남한에만 약 40만명, 인구순위는 20위. 남양(南陽)·풍산(豊山)·부계(缶溪)·홍주(洪州) 외에 문헌에는 개녕(開寧)·회인(懷仁)·경주(慶州)·풍주(豊州)·상주(尙州)·정안(廷安)·의주(義州)· 개성(開城)·안산(安山) 등 10여 본이 전하나 현재는 위의 4본만 확인된다.


그중에도 대종은 남양(南陽), 버금이 풍산(豊山)으로 나머지 부계(缶溪) 홍씨가 1천여 가구 홍주(洪州)는 몇 백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40만 홍씨의 거의 90%를 차지하는 남양 홍씨 중 당홍과 토홍의 비율은 8대 2정도 정립했다. 이것은 또 두 남양 홍씨가 어느 한쪽에 흡수되지 않고 유지돼 온 요인이기도 하다.


조선조(朝鮮朝)에 남양 홍씨는 모두 3백 29명(당홍 206, 토홍 123)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884명, 안동 권씨(安東 權氏) 359명, 파평 윤씨(坡平 尹氏) 336명에 이어 네 번째의 서열이지만 인구 순위를 감안하면 놀라운 강세다.


당홍에서만 상신(相臣) 8명, 대제학(大提學) 3명, 왕비(王妃) 1명[헌종의 계비(憲宗의 繼妃)], 청백리(淸白吏) 3명을 배출했고, 토홍은 토홍대로 상신(相臣) 3, 대제학(大提學) 2, 청백리(淸白吏) 3명을 배출했으니 남양 홍씨의 명성은 부동의 것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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