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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扶餘) 전(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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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전씨(扶餘全氏)

부여(扶餘)는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소부리(所夫里)라 불렀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660년(의자왕 2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부여 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751년(신라 경덕왕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이라고 개칭되었다.
부여 전시의 관조는 도시조 전 섭(全 攝)의 33세손으로 조선 때 군자감정(軍資監正), 공조 정랑(工曹正郞)을 지내고,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추증된 전 권(全淃)이다. 그가 부여에 자시(自是)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부여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淃)의 아들 신지(信之)는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거쳐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손자 오륜(五倫)은 성종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낸 충효(忠孝)와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충성(忠誠) 형제는 오륜(五倫)의 아들로 덕망높은 가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대천(大天)의 아들 수화(秀華)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고 흥빈(興彬)과 호경(好景), 언신(彦信) 등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른 천추(千秋)와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한 덕묵(悳默)은 부여 전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여 전씨는 남한에 총 34가구, 1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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