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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居昌)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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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장씨(居昌章氏)

거창(居昌)은 경상남도 북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거열군(居烈郡)인데 통일신라때 경덕왕(景德王)이 거창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합주(陜州:합천)에 속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 거제현(巨濟縣)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이 되었다. 후에 다시 거창이 되어 성종 때 군(郡)이 되었다가 중종때 현으로 강등,16 59년(효종 9) 안음(安陰)에 편입시켰으며 여러차례 변화를 거쳐 1895년(고종 32) 거창군(巨昌郡)이 되었다.
장씨(章氏)는 중국 하간(河間:지금의 직예성 진해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 문헌에 전해지는 본관은 거창과 복성(福城:보성 지방)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거창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거창 장씨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의 선대는 실전(失傳)되어 알 수 없으므로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겸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낸 그를 시조로하고 그의 아들 두민(斗民)이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아림(娥林:거창의 별호)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거창으로 하게 되었다. 그 후 두민(斗民)의 아들 영순(永巡)이 고려의 절신(節臣) 이양중(李養中)의 사위로 공임왕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등을 지냈으며, 후손 참장(參莊)은 공양왕 때 돈령부 부정(敦寧府副正)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거창군 웅양면 한현촌으로 퇴거(退居)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외 선조 때 훈련원정(訓鍊院正)으로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순절한 헌휘(獻輝)와 판관(判官)을 지낸 헌서(獻瑞)가 유명했으며, 석규(錫奎)는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거창 장씨는 남한에 총 1,039가구, 4,2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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