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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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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知禮) 장(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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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장씨(知禮張氏)
시조(始祖): 휘(諱): 일성(日成)
호(號): 죽계(竹溪)
시호(諡號): 충무(忠武)
관직(官職): 지례백(知禮伯)

경상북도(慶尙北道) 지례(知禮)는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이었고 통일신라의 경덕왕이 지례로 고쳐 개령군 영현을 삼았으며, 현종 9년(서기 1018년) 경산부에 속하고 공민왕 2년(서기 1390년)에 감무를 두었으며 조선 태종때 현감을 두었다. 1896년 군이 되었다가 1914년 김천군에 병합되었다.
시조(始祖) 일성(日成)은 고려 객국공신(開國功臣) 태사공 정필의 13세손으로서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성계를 도와 아지발도(阿只拔都) 토벌에 공을 세워 지례백에 봉하여졌기 때문에 후손들은 본관을 지례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성의 둘째 아들 기원이 공민왕 1년 (서기 1352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좌시중에 이르렀으나 조선개국 후 벼슬에서 물러나 고려에 절개르 지켰다.
기원의 아들 운준은 태조 5년(서기 1396년)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정종 즉위시에 세상이 어지러움을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포기하고 풍덕에서 숨어 살았으며 이름을 준으로 고친 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일성의 7세손인 문길은 조선 때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때 연안성을 고수하고 왜적을 토벌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지례장씨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지례장씨는 남한에 90가구에,37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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