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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浙江) 시(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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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 시씨(浙江施氏)

절강은 중국 동남부 동해 연안에 위치하여 양자강 하류의 남부를 점하고 있으며 전당강에 의하여 동서로 나누어져 항주를 성도로 하고 있다.

시씨는 본래 중국 오흥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주나라 경왕(敬王:제26대 임금, 재위기간: BC 519 ∼ 476) 때 성유(聖儒)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시지상의 후예로 전한다. 우리나라 시씨의 연원은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명군의 유격종군으로 참전했던 무장(武將) 시문용(施文用)이 전쟁이 끝나고 명군이 철수될 때 어깨의 큰 부상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경북 성주에 정착한 것이 시초가 되며, 전해지는 관향은 절강 단본이다. 그 후 문용(文用)은 창녕 장씨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슬하에 아들 영건(永建)과 영달(永達)을 낳아 절강 시씨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하였고, 본향지인 중국 절강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으며, 광해군 때 당시 영의정(領議政)이었던 정인홍(鄭仁弘)의 추천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에 올랐으나 인조반정이 일어나 정인용이 실각되자 성주로 돌아와 학문연구에 전력했다. 특히 문용은 의학과 병법에 조예가 깊어 『병학기정』과 『의복결유』·『감여지남』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문하에서 훌륭한 학자를 많이 배출하여 문명을 떨쳤다.
그러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인조가 삼전도(三田度: 지금의 송파구 송파동에 있던 한강 상류의 나루터)에 수항단을 쌓고 청나라 태종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한 후, 청태종이 조선에 남아있는 명나라 유민들을 모두 체포하여 강제 송환을 시키려할 때 문용은 성주군 용암면 문명동 군성산 기슭에 은거하며 청나라에 망한 무국 명나라의 재기를 기원했다. 영조대에 이르러 당시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임진왜란 참전용사> 후손들의 생활상을 조사하여 왕에게 보고하자 영조는 문용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하고 그 후손들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하게 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가맥을 이어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조 때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낸 유정(有鼎)과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한 유영(有榮)이 유명했으며, 한익(漢翼)은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에 올라 문장으로 명망이 높았던 치황(致璜)·정석(廷錫)·영석(暎錫)·민식(敏植)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쳐 절강 시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절강 시씨는 남한에 총 526가구, 2,20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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