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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楊州) 송(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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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송씨(楊州宋氏)

양주(楊州)는 경기도(京畿道)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매성군(買城郡)혹은 창화군(昌化郡)이라 하였는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내소(來蘇)로 고치고 고려 초에 견주(見州)로 승격하였다가 1668년(헌종 9) 양주에 속하였다. 조선조에는 다시 양주로 개칭한 뒤 1895년(고종 32) 목(牧)을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양주 송씨는 조선 개국 초에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낸 송도성(宋道成)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여산 송씨의 시조인 송유익(宋惟翊)의 후손으로 전하나 상계(上癸)를 고증(考證)할 수 없고, 누대(累代)로 양주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해온 사족(士族)의 후예인 후손들이 선조(先祖)의 원향(原鄕)인 양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도성(道成)의 증손 효지(효智:이권의 아들)가 조선 초에 그의 아들 희주(希周)와 함께 주부(主簿)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으며, 참봉(參奉) 덕림(德林)의 손자 순령(舜鈴)이 직장(直長)을 역임하여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한편 영조(英祖)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동윤(東胤)은 봉상시 직장(奉常寺直長)과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병조 좌랑(兵曹佐郞)과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지내고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한 후 충청 도사(忠淸都事)로 치적(治績)을 남겼다. 한말(韓末)에 와서는 영호(永祜)와 재호(在祜)가 뛰어났는데,김화식(金華植)·이봉로(李鳳魯)·김창숙(金昌淑) 등과 더불어 만주와 몽고 지방에서 개간사업을 일으켜 장기적인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영호(永祜)는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을 결의하고 국내로 돌아와 자금을 모으다가 피체되어 3년 간 옥고를 치루었으며, 재호(在祜)는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면도칼로 목을 잘라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수개월간 입원치료를 하면서도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양주 송씨의 가맥을 이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양주 송씨는 남한에 총 362가구, 1,63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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