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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一直) 손(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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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손씨(一直孫氏)


1> 시조 : 손 응[孫 凝]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일직(一直)은 경상북도 안동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일직현인데 경덕왕이
일녕으로 고쳐서 고창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고려초에 다시 일직이라 하고, 지금은 안동군에
속한 일직면으로 남아 있다.

일직손씨(一直孫氏)는 안동 손씨라고도 칭하며, 그 선계는 고려때 중국 송나라의 난세를 피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해 온 손응(孫凝)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본성이 순씨(荀氏)였으나 고려 현종의 이름이 순(詢)이어서 그 음(音)이
같다고 하여 손씨(孫氏)의 성으로 개성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그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고려 때 장군을 지낸 간(幹)을 중시조로 하여 복주(안동군 일직면 송리동)에 자리잡아
살면서 본관을 일직으로 삼게 되었다.

일직손씨는 중시조 간(幹)의 6세손 홍량(洪亮)이 1287년 일직에서 출생하여 6대의 왕조를
거쳐면서 벼슬이 판삼사사에 이르렀고 복주 부원군에 봉해져서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특히 그는 40여년간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 서 고려말기의 어려운 국정에 크게 이바지
하다가 1351년 65세로 치사하여 향리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364년 홍건적의 난 평정을
축하하러 개경에 갔더니 왕은 영정(影幀)과 구절산호용장(九節珊瑚龍杖: 용을 아로새긴
아홉 마디의 산호 지팡이)을 내리며 "경의 두 아들도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그후 그의 맏아들 득수(得壽)는 밀직사 좌대언 등을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초계군수를 지낸
아들 웅발(雄發)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으며, 차남 득령(得齡)은 전공판서 겸
진현관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 가맥을 이은 인물로는 홍량(洪亮)의 증손 관(寬)이 진성 현감을 지내고
밀양의 용평리로 이거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어 오늘날 밀양군 산외면 다원리를 비롯한 영천, 김해 등지에 취락을 이루게 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때 눈부신 훈공을남긴 처눌(處訥)과 인조반정후 단성 현감을 지내고
정묘호란에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이 유명했으며, 동지중추부사필억(必億)의 아들 명대(命大)는
선전관과 진도군수를 지내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세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하였으며 훈련도감 별장과 선천 방어사를 역임하여, 일직손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직,안동손씨는 남한에 총 5,289가구,
22,21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대구시 동구 도동
경남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정동
경남 밀양군 상내면 송백리

경북 의성군 춘산면 식흥동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29번길 9 (심곡2동) 봉호B/D 401호| 관장 : 김 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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