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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巨濟) 반(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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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반씨(巨濟潘氏)



반씨(潘氏)는 중국 형양(하남성 개봉도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로,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 필공 고(高)의 아들 계손(季孫)이 반(潘) 땅에 봉해져서 식읍으로 하사받은 땅 이름을 성 (姓) 으로 삼았다고 한다.
춘추시대 이후로 유학자와 재상을 많이 배출하여 명족으로 일컬어진 반씨는 송나라 출신인 반부(潘阜)가 한림학사를 거쳐 이부상서를 지내고 몽고정벌을 간청했다. 그런데 간신 가사도(賈似道)가 그를 미워하여 몽고에 사신으로 보내어 은밀히 죽이게 하였으나 원의 세조는 문무를 겸비한 그의 재주를 가상히 여겨 죽이지 않고 벼슬을 내려 부하로 삼으려 하였다. 그는 사양한후 제국대장 공주를 배종하고 동래(東來)하여 고려 원종과 충렬왕조에서 정당문학을 지내고, 명장 김방경을 따라 일본정벌에 공을세워 시중에 오르고 기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65세에 벼슬을 사직하고 거제로 내려가 정사(精舍)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반씨의 문호가 열리게 되었다.

묘소는 경남 거제군 장승포읍 계주리 국토봉에 있으며, 향사일은 9월 9일 이다.
반정승묘(潘政丞墓) : 국사봉의 중허리에 거제반씨(巨濟潘氏) 시조(始祖) 반부(潘阜)의 묘소로 원종(元宗) 8年(1267) 원(元)나라의 한림학사(韓林學事)로 일본(日本)에 사신(使臣)으로 갔다와 동15년(同15年)(1274) 다시 나오면서 제국대장(齊國大長) 공주(公住)인 알리공주(謁里公住)를 모셔와 충열왕비(忠烈王妃)가 되었으니 문하시중(門下侍中)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문절공(文節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문절사(文節祠) : 거제반씨(巨濟潘氏) 시조 반부(潘阜)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반중인(潘仲仁) 반중경(潘仲慶)을 봉사하는 사우를 반씨재실이라 하며 서문(西門)마을 도론곡(道論谷)의 거제공설운동장(巨濟公設運動場) 북쪽에 있다.
문파로는 시구공파.총랑공파.문효공파.감찰공파(남평관).문헌공파(광주관).강화공파(결성 관)이 있다.

거제(巨濟)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해안(南海岸)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소가야국(小伽倻國)의 일부였던 독로국(瀆盧國)에 속했다가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상군(裳郡)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에 거제로 개칭되었다. 조선조에 와서는 거창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으로 불리다가, 1422년(세종4)에 거제현(巨濟縣)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895년(고종32)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반부(潘阜)의 아들 정(挺)과 유항(有抗)을 시작으로 가세가 일어나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산거하며 세거지명에 따라 기성(岐城), 충주(忠州), 남평(南平), 결성(結城), 청도(淸道), 홍천(洪川), 광주(光州) 등 17본으로 갈리었으나 모두가 동원(同源)이므로 '거제반씨 정미 대봉보에는 거제반씨로 합보(合譜)하였다.
반씨(潘氏)의 연원(淵源)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중국(中國) 영양(榮陽:하남성 개봉도)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여섯째 아들인 계손(季孫)이 반(潘) 땅에 봉해지고 그 곳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반씨(潘氏)의 성(姓)이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반씨대동보(潘氏大同譜)]의 기록에 의하면 시조(始祖) 부(阜:본명은 서)는 게손(季孫)의 9세손으로 서기 1230년(고종17)에 출생하여 문과(文科)에 올라, 이부 상서(吏部尙書)로서 1265년(원종 6) 원(元)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원(元)의 세조(世祖:몽고 제국 5대의 황제, 재위기간:1260~1294)로부터 재능(才能)을 인정받아 신하(臣下)가 되어 달라는 권유와 협박을 당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節義)를 지킴으로써 원(元)의 세조(世祖)가 가상히 여겨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원나라 세조의 딸. 충렬왕비가 됨)를 배행(陪行)하여 고려(高麗)로 돌아오게 하였다고 한다. 그후 충렬왕(忠烈王)이 그의 인품(人品)과 공적(功績)을 치하하여 문하시중(門下侍中:문하성의 종1품 최고 벼슬)의 벼슬을 내리고 기성(岐城:거제의 옛 지명) 부원군(府院君)에 봉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거제(巨濟)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기성(岐城),남평(南平), 광주(光州),결성(結城) 등의 관향(貫鄕)으로 분파(分派)되었다.

가문의 인맥을 살펴보면 시조 부(阜)의 증손 익순(益淳)이 고려 우왕때 문하평리을 거쳐 좌시중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덕해(德海)와 복해(福海)가 현달하여 명문의 기틀을 마련했다. 문무를 겸비한 명신으로 우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복해는 왕이 사냥을 나가 말에서 떨어져 멧돼지의 습격을 받게 될 순간 활을 쏘아 왕을 위기에서 해낸 일화가 전하며, 밀직부사와 문하찬성사를 거쳐 추충양절익대좌명보리공신에 올라 제성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최영장군을 암살하려던 조반, 임견미와의 관련 혐의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가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복권되었다. 한편 복해의 아들 자건(自建)은 시중 배극렴의 사위로 조선이 개국된 후 이조판서와 좌찬성을 역임하고 영평군에 봉해졌으며, 손자 충(忠)도 조선 창업에 공을 세워 해양군에 봉해졌다가 광주백에 추봉되었다. 세칭 절효선생으로 불리웠던 유(儒)는 판도판서 덕해(德海)의 손자로서 부친상을 당하자 여막에서 3년동안 시묘하여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고, 이조정랑 호(湖)의손자 효손(孝孫)은 황주목사와 이조 참판을 거쳐 회령부사로 나갔다. 우형(佑亨)은 당세의 석학 김굉필의 제자로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4등공신으로 이성군에 봉해졌으며, 대사헌과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내고 기성군에 개봉(改封)되었다. 청렴 근엄한 관리로 명성을 떨쳤던 석평(碩枰)은 서린(瑞麟)의 둘째 아들로 주요 내외직을 두루 역임한 후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그의 손자 인후(仁後)는 선조때 사마시에 올라 학명을 떨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문경 새재에서 공을 세워, 한산해전에서 순절한 중인(仲仁), 중경(仲慶) 형제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병자호란때 청병(淸兵)과 싸우다가 강화에서 전사한 일량(日良)이 유명했고, 한말에 와서는 한일 합방의 비분으로 할복자결한 하경(夏慶)이 가문을 대표했다.

반씨는 1975년에 3,548 가구로 집계되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5,149가구, 21,5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의 집성촌
- 충북 음성군 원남면 포천리
- 전남 장성군 서삼면 송현리, 서삼면 일원
- 전북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 경북 청도군 이서면 구라동
- 전북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
- 경북 칠곡군 칠곡면 매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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