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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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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載寧) 미(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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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미씨(載寧米氏)

재령(載寧)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시대에 식성(息城) 또는 한성(漢城)·내 홀(乃忽)·한홀(漢忽) 등으로 부르다가 신라 경덕왕(景德王:제35대 왕, 재위기간:742∼755) 때 중반군(重盤郡)이라 했고, 고려 초에 안주로 고쳤다. 995년(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고 현종 때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예속시켰으며 1217년(고종 4) 재령으로 개칭하여 현으로 승격, 1397년(태조 6) 풍주 관하의 삼지현(三支縣)을 합하고, 1415년(태종 15) 군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미씨는 중국 경조(京兆:지금의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문헌에 전해지는 본관으로는 재령을 비롯한 송림(松林:경기도 장단지방)·유성(儒城)·방산(方山:강원도 양구지방)이 있다.

우리나라 미씨는 기자(箕子)가 동래할 때 복술가인 미씨를 대동한 것이 시초가 된다고 전하는 문헌이 있으며, 일설에는 1771년(영조 47)에 창씨(創氏)하였다고 한다.그러나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고 보첩이 전하지 않아 정확히 상고할 수 없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살고 있는 미시훈(米時薰)씨의 증언에 의하면 연대미상인 미영성(米瑩盛)이 백호장(百戶長)을 지내고 함경도 종성군 행영(行營)의 도통사(都統使)를 역임한 후 종성에 정착하여 재령 미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고 하며, 그 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5세손 병제(秉濟)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계대하고 있다.

미씨는 1930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함경북도 6가구, 1960년에는 39명으로 집계되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42가구, 1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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