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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南原) 독고(獨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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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독고씨(南原獨孤氏)

남원(南原)은 전라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일찌기 백제시대(百濟時代)에는 고룡군(古龍郡)이라 하다가 660년(신라 무열왕 7) 당(唐)나라 무장(武將) 소정방(蘇定方)이 신라(新羅)와 연합하여 사비성을 함락, 백제를 멸망시키고 대방주 (帶方州)라 고쳐 일시 지배하였으나 신라에 합병되어 신문왕(神文王)이 소경(小京)을 두었으며 경덕왕(景德王) 때 남원(南原)으로 고쳤다. 고려조에 한때 대방(帶方)이라 하였으나 남원부(南原府)로 지속되어 조선때 와서 남원대도호부(南原大都護府)로서 1군(郡) 12개현(縣)을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원군(南原郡)이 되었다.

독고씨(獨孤氏)는 중국 고 양(高陽 : 지금의 직예성 보정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남원(南原), 광릉(廣陵 : 중국)을 비롯하여 나주(羅州), 황주 (黃州), 의주(義州)등 다섯 본(本)이 있는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한다. 남원독고씨(南原獨孤氏)는 중국 하남(河南) 출신의 독고공순(獨孤公舜)이 신라 말엽에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동래(東來)해 정착세거(定着世居)한것이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계대(系代)를 잇지 못하다가 그의 후손 독고 신(獨孤信)이 학행(學行)으로 경향(京鄕) 각지에 명성을 떨치고 나라에 공을 세워 남원군(南原郡)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신(信)을 기일세(起一世)하여 남원(南原)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남원독고씨는 남원군(南原君) 신(信)의 아들 석(碩)과 청(淸)의 형제 대에서 두 계통으로 갈라져서 후대로 내려오며 가문이 크게 번성하였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조선 인조(仁祖) 때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었던 입(立 : 교수 행의 맏아들)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의주(義州)의 성(城)을 수비하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아버지 행(行)을 비롯하여 아들 수와 함께 3대가 순절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우 성(成)도 성(城)이 함락되자 적진(敵陣)에 뛰어들어 수백명을 죽이고 자신도 장렬한 최후를 마침으로써 충절(忠節)의 가통(家統)을 더욱 빛냈다. 그외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오른 필(弼), 암(巖)의 부자와 판관(判官) 관(寬 : 호군을 역임한 산의 아들)이 유명했고, 예빈시 첨정(禮賓寺僉正) 익(益)은 효자로 이름난 점(漸), 공조참의(工曹參議) 웅(雄)과 함께 가맥(家脈)을 이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원독고씨(南原獨孤氏)는 남한에 총 209가구, 674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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