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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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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潭陽) 국(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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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국씨(潭陽鞠氏)

시조 : 국주(鞠周)

국씨는 본래 중국 송나라 사람인 국주가 고려 인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민왕조에 병부상서를 지냈고, 그의 아들 국유는 1369년(고려 공민왕 18) 부통사가 되어 도통사 최영과 함께 탐라를 토격하고 병부상서 겸 판의금부사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사하였다.
그후 유의 맏아들 무가 아우 성과 황을 데리고 담양으로 퇴거하여 후손들이 담양에 세거함으로써 담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국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와 [증보문헌비고]등에 담양을 비롯하여 영광, 복성, 진주, 대구, 부령 등 여섯 본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담양을 제외한 관향은 미상이다.
담양국씨는 황의 현손 경례가 1451년(문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고 세조 때 사간으로서 왕의 난정을 직간한 후 은퇴하여 학문에만 진력한 강직한 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세조가 여러번 대사간에 임명했으나 끝까지 불취했고 그의 아들 거경, 화경, 승경, 장경, 방경, 치경의 대에서 크게 번창하였으며, 계공랑을 지낸 후손 원룡의 손자 민중이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효종 때 효행이 뛰어나 정려가 세워진 침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전남 담양군 일원
전북 전주시 일원
충남 금산군 일원
전북 고창군 일원
전북 익산군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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