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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남(濟南) 왕(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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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 개성(開城) 해주(海州) 
제남 왕씨(濟南王氏)
시 조 휘(諱): 왕 유(王 儒)

제남(濟南)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의 성도(省都)로서 황하의 삼각주(三角洲)와 동산(東山) 과의 경계선 가까이에 위치한 지명으로 1904년 개부(開埠)하였다. 제남왕씨(濟南王氏)의 시조(始祖) 왕 유(王 儒)는 처음에 성(姓)이 박씨(朴氏)였는데, 태봉국(泰封國) 궁예(弓裔)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궁예의 횡포가 차츰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산 속에서 은거(隱居) 하였다가, 왕 건(王 建)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자 등용되어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태조(太祖) 왕 건(王 建)이 왕씨(王氏)로 사성(賜姓)한 것으로 전한다. 한편 또 다른 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문왕(周文王)의 후예인 왕씨(王氏)를 멸족(滅族)하고자 1945년(인조 23) 왕봉강(王鳳崗)이란 사람을 심양 포로소(瀋陽捕虜所)로 압송(押送)하였다. 그때 마침 심양(瀋陽)에 볼모로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그를 보고는 서로 뜻이 맞아 결의(結義)하고 함께 동래(東來)하여 이문(以文)이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하였고, 궁중(宮中)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북벌대계(北伐大計)를 논의(論議)했다. 그 후 자손(子孫)에게 세록(世祿)을 하사(下賜)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로 추증하였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제남(濟南)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낸 한익(韓翊)과 군수(郡守) 한정(漢禎)이 유명했으며,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도욱(道郁)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도원(道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경진(景進), 호조 참판(戶曹參判) 덕구(德九) 등이 뛰어났다.
그 외 중추원(中樞院)의 의관(議官)을 역임한 제만(濟萬)과 근식(瑾植)·정식(廷植)·원식(瑗植)등이 뛰어났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남 왕씨(濟南王氏)는 남한(南韓)에 총 196가구, 8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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