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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淸州) 사(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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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居昌) 경주(慶州) 
청주사씨(靑州史氏)

시 조 : 사 요(史 繇)
집성촌 :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위전리

청주(靑州)는 중국(中國) 화북지방(華北地方)에 인접한 지명으로 고대 중국을 아홉으로 나누었던 구주(九州)의 하나였으며,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일대이다.
사씨(史氏)는 중국 경조(京兆: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때 사람인 사질의 후예(後裔)가 관직(官職)의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씨(史氏)는 산동성 청주(山東省 靑州) 출신인 사요(史繇)가 명(明)나라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올랐으나 세자(世子)와 함께 반역을 꾀했다는 모함을 받자 아들 형제 중 장남 중(重)을 데리고 1372년(공민왕 21) 고려(高麗)에 망명하여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위전리(京畿道坡州郡月籠面葦田里)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사요(史繇)를 시조로 받들고 그의 출신지인 청주(靑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사씨의 본관(本貫)은 청주(靑州) 외에도 거창(居昌)·경주(慶州)·파주(波州)·청송(靑松)·충주(忠州) 등 16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해지는데, 거창사씨(居昌史氏)는 고려 예종(睿宗) 때 귀화하여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서 여진(女眞)의 침입을 토벌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후 거창(居昌)에 뿌리를 내린 사영(史榮)의 후예로 알려졌으며, 청송사씨(靑松史氏)는 청주사씨의 시조 사 요(史繇)가 우리나라에 건너올 때 중국에 두고 온 둘째아들 직(直)의 8세손인 세용(世用)이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明)나라 원군으로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된 후 조선(朝鮮)에 귀화하여 경북 청송에 터를 잡아 본관을 청송으로 칭관(稱貫)해 왔다. 그러나 청주사씨와 한 뿌리의 자손임을 알고 청주로 합본(合本)했다고 한다. 그후 시조의 아들 중(重)이 세종(世宗) 때 경상좌도관찰사(慶尙左道觀察使)를 지내고 1429년(세종 11) 대마도(對馬島) 정벌에 출정했다가 전장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들 극명(克明)은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역임하여 평택현감(平澤縣監)을 지낸 의담(義淡)과 함께 가문(家門)의 기반을 다졌다.
그밖의 인물로는 감찰(監察)을 지낸 득손(得孫:의담의 아들)과 도사(都事) 기린(麒麟:득손의 손자), 주부(主簿) 학수(鶴壽), 공조참의(工曹參議) 원훈(遠勳) 3형제가 뛰어났으며, 도사 기린의 아들 맹련(孟連)은 형조좌랑(形曹 佐郞)을 역임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용(龍:주부 학수의 아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손동(遜東:공조참의 원훈의 아들), 형조좌랑 영주(英周),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종남(種男)과 함께 청주사씨를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사씨(靑州史氏)는 남한(南韓)에 총2,000가구, 8,66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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