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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와 가첩(家譜와 家牒) | 편찬된 형태, 내용에 상관없이 동족 전부에 걸친 것이 아니라 자기 일 업적 ,전설, 사적을 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한 세계표(世系表)를 가리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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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승보(家乘譜) | 본인을 중심으로 수록하되, 시조로부터 자기의 윗대와 아랫대에 이르기까지의 이름과 업적 ,전설,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족보 편찬의 기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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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보(系譜) |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서, 한 씨족전체 또는 한 부분만을 수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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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자(系子) | 후사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할 경우 혈족 중에서 입양하여 세계를 이을 때 계자(系子)라고 써서 적자와 구별한다. 계자는 세표에 생부(生父)를 기록한다. 또한 계자 생가의 세표에는 출계(出系)라고 쓴다. 이렇게 양자를 들일 때는 되도록 가까운 혈족 중에서 입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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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명(冠名) | 옛날에는 어릴 때 아명(兒名)을 부르다가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를 올리면서 짓게 되는 관명(冠名)이 있었다. 흔히들 자(字)라고 했다. 자(字)는 집안어른이나 스승, 선배 등이 성인이 된 것을 대견해 하는 뜻으로 지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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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代) | 세(世)가 시조를 1세로 하여 차례로 정하는 것이라면, 대(代)는 기준이 되는 사람을 빼고 계산한다. 즉, 시조를 기준으로 할 때 2세인 자(子)는 1대손(代孫), 3세인 손자는 2대손, 4세인 증손자(曾孫子)는 3대손, 5세인 현손(玄孫)은 4대손 6세인 내손(來孫)은 5대손, 7세인 곤손(昆孫)은 6대손, 8세인 잉손(仍孫)은 7대손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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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보(大同譜) |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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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보(萬姓譜)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국내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줄기를 추려 내어 모아놓은 책으로 모든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청구씨보(靑丘氏譜)』, 『잠영보(簪纓譜)』, 『만성대동보(萬成大同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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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갈(墓碣) |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의 관리들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동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고 빈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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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비(墓碑) |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을 묘비(墓碑)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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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墓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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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지(墓誌) | 묘지(墓誌)는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이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릴 것에 대비한 것이다. 금속판이나 돌, 도판(陶板)에 죽은 사람의 원적(原籍)과 성명, 생년월일, 행적, 묘의 위치 등을 새겨서 무덤 앞에 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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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표(墓表) | 묘표(墓表)는 표석(表石)이라고 하며 죽은 사람의 관직(官職)이나 호(號)를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사적(事蹟)이나 비석을 세운 날짜와 비석을 세운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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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후(无后) | 계대를 이을 후사가 없다는 뜻으로, 보첩의 이름자 밑에 작은 글씨로 무후(无后)라 쓴다. 무후(無後)와 같은 이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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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配) | 배우자를 말한다. 부(夫)의 배우자는 처(妻), 처(妻)의 배우자는 부(夫)이다. 그러나 부계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기준이 되고 족보도 부계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므로 배(配)는 처(妻)를 의미하게 된다. 배(配)를 쓸 때는 봉작과 본과 성을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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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本貫) | 새 내용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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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관향(本貫/貫鄕) | 시조(始祖),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와 혈족의 세거지(世居地) 로 동족(同族)의 여부를 가리는데 중요하며,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씨(姓氏)의 종류(種類)가 적어서 일족일문 (一族一門)[같은 혈족의 집안(가족)]의 수가 많아지게 되어 성씨(姓氏)만으로는 동족 (同族)을 구분하기가 곤란하므로 본관 (本貫)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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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附子) | 후사가 없어서 호적이 없는 자를 입적시켜 세계를 잇게 하는 경우 부자(附子)라고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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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묘(墳墓) | 영혼불멸의 신앙을 가진 우리 민족은 이미 석기시대부터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이 있어 분묘의 형태가 나타났으며, 중국에서는 주(周)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분묘의 형태는 시대와 나라, 지방, 또는 문화상태, 계급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 하고 있으나 대체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자리를 잡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산을 뒤로 업고 남쪽을 향하면서 산의 줄기는 왼쪽으로 청룡(靑龍), 오른쪽으로 백호(白虎)를 이루고, 앞에는 물이 흐르며 주산(主山)의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앞은 몇 층의 단상(壇狀)을 이루면서 주위에 호석(護石)을 두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사대부의 무덤 주위에는 망주(望柱:무덤 앞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를 세우고, 석인(石人: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배치하였으며 분묘 앞에는 상석(床石:제물을 놓기 위하여 돌로 만든 상)과 묘표(墓表)를 두고 신도비나 묘비, 묘갈(墓碣)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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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碑銘) | 비에 새긴 글로서 명문(銘文), 비문(碑文)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고인의 성명, 본관, 원적, 행적, 경력 등의 사적(事蹟)을 서술하여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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