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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 막내아들 계자(季子)의 이름은?
  • 올린이 : 후학(後學) ( 2019.02.25 06:12 ; From : 124.53.120.38 )
  • 조회 : 527 회
  • 경순왕 막내아들 계자(季子)의 이름은?

    ○ 《삼국유사》(1281년. 일연) : 계자(季子)라 함.
    -- 경순왕 계자(季子)는 신라가 망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가 죽었다고 한다.
    ○ 《동국여지승람》(1481년. 칙명) : 사서에 실명인 왕자(王子)라 함.
    ○ 《하서 김인후 가장》(1561년. 양자징) : 김덕지(金德摯) 왕자(王子)라 함.
    ○ 《하서 김인후 신도비문》(1682년. 송시열) : 김덕지(金德摯) 별자(別子)라 함.
    -- 왕자의 이름은 사기에 실명(失名)이나, 가전에 김덕지(金德摯)라 한다. 학성부원군에 봉군되었다고 함.
    ○ 《김은열 묘지명》(1784년. 김노규)
    -- 신라 멸망 전 신라왕 김부의 왕자들은 누락함.
    --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항복 후 낳았다는 2자를 '김굉'(金鍠)이라 하며, 고려 태조 외손으로 낙랑공주 왕씨 소생이라 함.
    ○ 《고려평장사보국대안군 김은열묘지명》(1785년. 김사목)
    -- 신라 멸망 전 신라왕 김부의 왕자들은 누락함.
    --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았다는 2자를 '김황'(金湟)은 고려 태조 외손으로 낙랑공주 왕씨 소생이라 함.
    ○ 《신라경순왕전비》(1814년. 김계락) : 전비 박씨 소생의 차자(次子)라 함.
    --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았다는 1자 김일(金鎰), 2자 김황(金湟), 3자 김명종(金鳴鍾)을 배척 함.
    ○ 《김씨 분관록》(1887년. 김창희) : 김덕지(金德摯) 왕자라 함.
    --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았다는 8자들을 배척함.
    ○ 《증보문헌비고》(1908년. 칙명) : 김덕지(金德摯) 왕자라 함.
    --※ 계자(季子)는 신라가 망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범공(梵空)이라 하였는데, 개골산에 입산한 왕자와 동일인이라 함.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고려 항복 후 낳은 경순왕 김부가 나았다는 8자들을 소개하고, 2자를 평장사 김황(金湟)이라 함.
    -- 신라왕 경순왕 김부의 계자(季子)와 항복 후 낳았다는 2자 김황(金湟)을 별도 인물이라 함.
    ○ 《조선씨족통보》(1924년. 윤창현) : 김덕지(金德摯) 별자라 함
    --※계자(季子)는 신라 멸망 후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승명을 범공(梵空)이라 함.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은 3자 김영분(金永芬), 4자 김은열(金殷說), 5자 김석(金錫), 7자 김선(金鐥)이라 함.
    --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은 1자 일(鎰), 2자 황(湟), 3자 명종(鳴鍾), 제6자 건(鍵), 제8자 추(錘)등은 배척함.
    -- 신라 경순왕 김부의 계자(季子)와 항복 후 낳았다는 2자 김황(金湟)을 별도 인물이라 함.

    ○ 결론
    ★ 작금에 들어와서 일부 신라 김씨 후손들이 《조선씨족통보》에 "경순왕 김부의 둘째 아들을 '김굉'(金鍠) 또는 '김황'(金湟)이라 하며, 그는 "신라가 망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가 죽었다."고 하며, 경순왕 김부의 왕자인 계자(季子. 막내아들)의 행적과 동일시 하며 동일인이라 한다.
    ★ 그러나 정작 《김은열 묘지명》 원문에는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항복 후 낳았다는 제2자 '김굉'(金鍠) [또는 '김황'(金湟)]과 제4자 '김은열'(金殷說)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공(功)이 있는 신하(臣下)여서 장지(葬地)를 특사(特賜)하였다."고 하였다.
    ★ 《증보문헌비고》 및 《조선씨족통보》에도 신라 경순왕 김부의 왕자인 계자(季子)와 항복 후 낳았다는 2자 김굉(金鍠)[또는 김황(金湟)]을 별도 인물이라 한다.
    ★ 결론적으로 신라 경순왕 김부의 왕자인 막내아들 계자(季子)의 이름은 역사에는 실명(失名)이며, 일부 문헌에 '김덕지'(金德摯)라 하며 승명을 범공(梵空)이라 한다.

    [참고 사항]
    1. 1784년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 2자가 '김굉'(金鍠)이라 한다.
    2. 1785년 추기한 《고려평장사 보국대안군 김은열 묘지명》에는 경순왕 2자가 '김황'(金湟)이라 한다.
    3. 이후 일부 신라 김씨 일문에서 경순왕 계자(季子. 막내아들)와 '김황'(金湟)이 동일인이라 한다.
    4. 그러나 정작 《김은열 묘지명》 원문에는 경순왕 제2자 '김굉'(金鍠) [또는 '김황'(金湟)]과 제4자 '김은열'(金殷說)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공(功)이 있는 신하(臣下)여서 장지(葬地)를 특사(特賜)하였다고 하고 있다.
    5.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8자들의 이름도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6. 또 1785년 김사목이 《고려평장사 보국대안군 김은열 묘지명》을 추기(追記)하면서 제2자 '김굉'(金鍠)을 '김황'(金湟)으로, 제3자 '김명'(金鳴)을 '김명종'(金鳴鐘)으로 개명하고, 제4자 '김은열'(金殷說)의 시호를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이라 작호(作號) 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여 위작(僞作) 시비에 놓여있다.
    7. 조선조 말 경부김씨 일문에서 건립한 《신라경순왕전비》에도 경순왕 김부가 고려 항복 후 낳았다는 1자 김일(金鎰), 2자 김황(金湟), 3자 김명종(金鳴鍾)을 배척하고 있다.
    8. 조선조 말 제작된 일부 김씨 문중 족보를 제외한 《김씨 분관록》등의 역사 문헌은 《김은열 묘지명》을 배척하고 8자들을 기재하지 않고 있다.
    9. 《증보문헌비고》및 《조선씨족통보》등에도 경순왕 왕자인 계자(季子. 막내아들)하고, 경순왕 2자라는 '김황'(金湟)[또는 '김굉'(金鍠)]을 별도 인물이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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