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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님이 咸興金氏, 함흥김씨족보 있는지요
  • 올린이 : 방문인 ( 2019.01.08 07:42 ; From : 121.159.159.7 )
  • 조회 : 297 회
  • 김염(金廉)은 조선 정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승부윤(敬承府尹)을 지냈다.
    金廉 宣略行副司勇

    金濂(김렴) 定宗(정종)己卯(기묘)文科(문과)敬承府尹(경승부윤)○一云(일운)副尹(부윤)
    본관을 영흥(永興)에서 함흥(咸興)으로 수정. 함흥김씨 시조
    「영흥부향교기(永興府鄕校記)」에 따르면, 김렴(金廉) 등 60여 명을 모아 부지런히 가르쳤다고 한다.
    김염(金廉 조선조세종 때의 제주판관. 1422년(세종 4) 윤 12월
    함흥 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김기지(金驥趾) : 조선 연산군 7년(1501년)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22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군수(郡守)를 지냈다.

    [문과] 연산(燕山) 7년(150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22위(32/35)
    김기지(金驥趾)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함흥(咸興)이다. 외조부는 양자보(楊自甫)이다.1501년(연산군 7) 식년시에서 3등 2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18년(중종 13) 4월에 부령부사(富寧府使)로 재직 중, ‘사람됨이 용렬하여 육진(六鎭)의 초입인 거읍(巨邑)의 부사로 적당치 못하다’는 의견으로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중종이 김기지(金驥趾)는 문신으로서 무재가 있고, 수령(守令)을 거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수령에 적합하므로 체직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허락하지 않았다가 다음날 대사헌(大司憲) 이장곤(李長坤)과 정언(正言) 초계 최산두(草溪崔山斗)가 재차 아뢰자 체직을 허용하였다.1518년(중종 13) 7월에는 서산군수(瑞山郡守)로 재직하였는데, 사간(司諫) 정사룡(鄭士龍)과 장령(掌令) 민수천(閔壽千)이 김기지의 천성이 탐오하므로 수령직을 맡길 수 없다고 탄핵하였고, 이어 이조(吏曹)에서도 대간이 실정을 알고 정확히 논하였을 것이므로 김기지를 체직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1520년(중종 15) 문천군수(文川郡守)로 재직 중 왼쪽 늑골 부분으로 자식을 출산한 이변을 보고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인구는 1985년 131명, 2000년 187명이다. 15년 만에 56명이 늘었다. 2000년 현재 서울 45명, 부산 22명, 대구 15명, 인천 9명, 광주 2명, 대전 8명, 울산 3명, 경기 35명, 강원 8명, 충북 10명, 충남 3명, 전북 3명, 전남 3명, 경북 14명, 경남 6명, 제주 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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